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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과 잊혀진 역사 이야기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 최초의 일신교?

1. 조로아스터교의 기원과 창시자 – 조로아스터와 아후라 마즈다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로, 기원전 1500년~1000년경 고대 이란 지역에서 조로아스터(Zoroaster, 또는 자라투스트라 Zarathustra)에 의해 창시되었다. 조로아스터는 기존의 다신교적 신앙 체계를 거부하고, 우주의 유일한 창조자로서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강조하며 새로운 신앙을 제시했다.

그의 가르침은 ‘가타(Gāthās)’라는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조로아스터교의 핵심 경전인 ‘아베스타(Avestā)’의 일부로 전해지고 있다. 가타에서는 아후라 마즈다가 유일한 신으로 존재하며, 인간은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개념은 이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주요 일신교 사상의 근간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조로아스터교의 초기 형태가 완전한 일신교(monotheism)라기보다는, 선한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한 존재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후에 아리만 Ahriman으로 불림)의 대립을 강조하는 이원론(dualism)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조로아스터교를 최초의 일신교라고 단정하기에는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일신교적 개념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종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2. 조로아스터교의 선과 악 개념 – 이원론과 인간의 선택


조로아스터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선과 악의 이원론(dualism)이다. 조로아스터는 세계가 두 가지 상반된 힘, 즉 선한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한 존재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또는 아리만 Ahriman) 간의 끝없는 투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싸움의 일부가 되며, 옳은 선택을 해야 하는 존재로 간주된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이 결국 최후의 심판에서 보상을 받고, 악을 따른 사람은 형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이러한 개념은 이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최후의 심판, 천국과 지옥 개념과 유사하다.

특히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인간이 ‘아샤(Asha, 진리와 질서)’를 따르면 선한 삶을 살게 되고, ‘드루즈(Druj, 거짓과 혼돈)’를 따르면 악한 삶을 살게 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윤리적 개념은 기독교의 선악 개념과도 유사하며, 기독교의 구원(salvation) 개념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도 제시하는데, 선한 삶을 산 사람은 천국(파라다이스, Paradise)에 가고, 악한 삶을 산 사람은 지옥(드루즈, Druj)에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치나트 다리(Chinvat Bridge)’라는 영혼의 다리를 건너는 의식이 있으며, 이는 훗날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최후의 심판 개념으로 발전했다.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 최초의 일신교?

 

3. 조로아스터교와 페르시아 제국 – 국가 종교로서의 역할


조로아스터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국가 종교로 발전했다. 특히 아케메네스 왕조(Achaemenid Empire, 기원전 550~330년) 시기에 조로아스터교는 강력한 정치적·사회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다리우스 1세(Darius I, 기원전 522~486년)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가 통치 이념과 결합하여, 왕권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의 비문에서는 "나는 아후라 마즈다의 은총을 받아 이 나라를 다스린다"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는 조로아스터교가 왕권 신수설(the Divine Right of Kings)과 유사한 개념을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후대의 사산 왕조(Sassanid Empire, 224~651년)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더욱 강력한 국교로 자리 잡았으며, 사제 계급인 마기(Magi)가 정치·종교적 권력을 행사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사원들은 왕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관이 되었으며, 페르시아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슬람의 확산(7세기경)과 함께 사산 왕조가 멸망하면서, 조로아스터교는 급격히 쇠퇴하였다. 이슬람교가 중동 지역을 지배하면서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은 박해를 받았고, 많은 이들이 인도로 이주하여 파르시(Parsi) 공동체를 형성했다. 오늘날 인도와 이란에 소수의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남아 있으며, 전통적인 종교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4. 조로아스터교의 유산 – 현대 종교와 철학에 미친 영향


조로아스터교는 비록 현재 신자 수가 적지만, 현대 종교와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천사 개념, 선과 악의 대립, 사후세계, 최후의 심판 사상 등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요소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사탄(Satan)’ 개념은 조로아스터교의 악신 앙그라 마이뉴(Ahriman)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천국과 지옥 개념도 조로아스터교의 사후세계 개념과 유사하다. 또한 기독교의 최후의 심판 개념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분석되며, 이슬람교에서도 유사한 구원과 심판 사상이 등장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서구 철학과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는 조로아스터를 상징적인 인물로 사용하여 인간의 도덕과 초월적 가치를 탐구했다.

현재 조로아스터교 신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12만~15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주로 인도(파르시 공동체)와 이란에서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역사 속에서 쇠퇴했지만, 조로아스터교의 사상과 철학은 여전히 인류의 종교적·사상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조로아스터교는 역사상 최초의 완전한 일신교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일신교적 개념을 체계화 한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또한 현대 종교와 철학에 깊은 영향을 준 사상적 유산으로서, 그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